마태오 사도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St. Matthew)
 9월 21일
 징세리, 세금받는 사람, AD 50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입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붓으로도 전교를 하여 복음사가(福音史家)라는칭호를 받은 분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예수의 애제자(愛第子) 성 요한 사도요,또 한 분은 4복음서 중 제일 앞에 나오는 복음서를 저술한 성 마태오 사도이다.

 마태오의 옛 이름은 레위로 유다인인데, 당시 그 나라를 점령한 로마 제국의 세금 수금관리로 주님의 제2고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파르나움 세관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 세무 관리(稅務官吏)들은 규정된 세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부당한행위를 하며 사람들을 착취해 사용을 채우는 직업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세리를 독사와 같이싫어했으며, 조국인 유다를 배반하는 자로 취급했고, 때로는 세리와 죄인을 합쳐 같은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태오도 다른 세리와 같이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없으나, 하여간 재산을 많이 모았고, 제자들 중에서 가장 학문과 사교에 뛰어난 분이었다.
 복음서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그는 다른 복음 사가와는 달리 당당히 자기 전직을 명기한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겸손지덕이 뛰어났는지를 알수 있다. 마태오가 언제 주님과 친근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가파르나움 지방을 자주 왕래하셨으므로 아마도 공생활 초기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어떤 날 그는 여전히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주님께서 지나가시며 "나를 따르라"는 고마운 말씀을 하셨다. 마태오가 전부터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지는모르나 "나를 따르라"는 이 한마디 말씀에 즉시 수입이 많은 세리직을 버리고 그 제자의 일원이 되었고,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마태오라고 개명했다. 이는 '주님의 은덕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그 후 그가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기념으로 예수와 그의 제자는 물론 지식인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바리사이들이 주님의제자들에게 당신들의 스승은 어찌하여 비난받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같이 하느냐고비난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필요합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하시며 책망하신 것은 바로 이 때의 일이다.

 마태오는 모든 고난을 주님과 함께 했으며,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그는 다른 제자와 더불어 주님의 부활, 승천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성령을 받은 후 9년간 유다 지방에 머물러 전교를 하고 42년에 타국으로 전교를 떠나기 전에 복음서를 저술하고, 사도들의 설교로 입교한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이복음서는 아람어로 저술되었는데 이는 당시 유다인들이 잘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전교하기 위해 이디오피아로 향하여 사발에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그 어느 곳에서고 무수한 사람을 개종시켰으며, 에우지포왕의 왕자를 중병에서 기적으로 구출한 결과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까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하며, 이제피아라는 공주는 동정으로서 하느님께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힐타코라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 이피제이아의 미모를사랑하고 마음에 두어 그녀를 왕비로 취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히 이를 거절하자 왕은 대단히 분노하며 그것이 마태오 사도의 술책이 아닌가 생각하고 이에 증오심을 품고 사도를 잡아 갖은 고문과 형벌을 가한 후 그를 땅에 못 박아 죽게 했다. 때는 90년경이며,그의 유해는 후에 남 이탈리아의 살레르모에 이송되어 오늘날까지 그곳에 잘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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